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이사르의 내전 (문단 편집) === 테살리아로 진격 === 이때 카이사르군 중 일부가 포로로 잡혔는데 [[라비에누스]]가 그들을 모두 살해하는 일이 있었다. 그는 폼페이우스 측의 신뢰를 받기 위해 그런 짓을 한 것이었다. 한편 카이사르는 적을 보자마자 겁에 질려 달아난 병사들을 질책하였고 특히 자신의 눈 앞에서 깃발을 버리고 달아난 바 있던 기수들을 강등시켰다. 이러한 질책은 카이사르군을 크게 고양시켰다. 그 이유는 이들 병사들은 갈리아, 게르만, 이탈리아, 히스파니아를 제패했다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신참병을 상대로 고참병이 겁먹고 내뺐다는 것이 그들의 프라이드를 손상시켰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병사들은 모두 힘든 노역을 자처했고 장교들은 폼페이우스군의 포위하는 것을 다시 시도해볼 것을 원하였다. 하지만 카이사르는 포위망이 이미 뚫려버렸으므로 더이상 포위전을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보아서 진영을 거둔다. [[파일:attachment/카이사르의 내전/mpjw2.jpg]] (양군의 진격로) 진영을 거둔 카이사르는 아폴로니아를 향해 이동하였다. 그의 기동은 매우 신속하게 이루어졌으므로 폼페이우스가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었다. 폼페이우스는 서둘러 기병을 보내봤으나 오히려 반격을 받아 손실을 입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 뒤 아폴로니아를 향해 두 군대는 경주를 하기 시작하였다. 아폴로니아는 카이사르의 주요 보급로였고 만일 폼페이우스가 먼저 도착한다면 앞서의 패배로 인해 그에게 넘어갈 위험이 있었기에 두 군대는 전력을 다해 이동한 것이었다. 하지만 카이사르군은 먼저 출발한 데다 고참병들이므로 재빨랐다. 폼페이우스는 전혀 따라잡을 수 없었고 중도에 마침내 추격을 포기한다. 폼페이우스는 진격을 포기하는 대신 도미티우스와 메텔루스 스키피오가 대치중인 테살리아로 이동해 도미티우스를 협공해 격파하고 스키피오와 합류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때 이미 아폴로니아로 도착한 카이사르는 그곳에 수비대를 배치하였고 그도 도미티우스를 향해 행군을 개시하였다. 이렇게 되자 두 군대는 또 다시 경주를 시작하였다. 이번엔 폼페이우스가 먼저 출발하였고 카이사르는 우회하는 루트로 접근해야했다. 따라서 카이사르는 도미티우스에게 서신을 보내 그에게 합류하라고 지시하였는데 근처 길목의 부족들은 전부 폼페이우스 쪽으로 붙어버렸으므로 전령은 도미티우스에게 가지 못했다. 이때 카이사르에겐 행운이 찾아왔는데 즉, 도미티우스의 정찰병을 본 배신한 부족들이 도미티우스군을 조롱하며 카이사르가 패배하였으며 조금만 있으면 폼페이우스가 와서 그들을 무찌를 것이라고 놀렸기 때문이었다. 이 소식에 크게 놀란 도미티우스는 즉시 진영을 거두고 서둘러 카이사르가 있는 쪽으로 합류하였다. 이때의 합류는 간발의 차였고 카이사르는 그의 저서에서 4시간의 차이로 도미티우스의 목숨을 구했다고 서술한다. 도미티우스의 2개 군단이 합류한 뒤 카이사르는 병력을 이끌고 테살리아로 진입한다. 그는 우선 곰피라는 도시로 접근하였다. 곰피는 카이사르에게 붙은 바 있었으나 폼페이우스의 승리 후 그를 배신하였다. 카이사르는 하루 만에 이 성을 점령한 뒤 다른 도시들에 대한 본보기로 병사들을 보내 약탈하게 한다.[* 당시의 약탈은 상상 이상으로 잔혹하였다. 로마군도 예외는 아니어서 도시민 중 젊은이들은 노예로 삼고, 여자는 강간의 대상이었으며 모든 시민의 재물은 지휘관 앞에 진열된 뒤 그와 그를 따르는 병사들의 몫으로 분배되었다.] 그 뒤 곧장 메트로폴리스로 향했는데 그 도시민들은 처음엔 저항하려하다 곰피의 운명을 듣고 그에게 항복한다. 카이사르는 메트로폴리스에는 손 하나 대지 않았다. 이 소문은 각지에 퍼졌고 아직 폼페이우스가 테살리아에 도착하지 않았으므로 대부분의 그리스 도시들이 카이사르를 따르기로 마음먹는다. 며칠 뒤 폼페이우스군도 테살리아에 진입한다. 이곳에서 카이사르와 마주친 폼페이우스는 파르살루스의 언덕에 진을 쳤고 카이사르와 마주보았다. 그리고 이 부근에 있었던 스키피오의 2개 군단이 폼페이우스에 합류하였다. 이로써 그의 병력은 11개 군단 5만 2천여 명의 병력이 되었다. 군세가 불어나자 병사들과 지휘관들의 자신감은 드높아졌다. 이들은 더 이상의 지구전은 오직 폼페이우스가 전직 집정관, 법무관들을 노예처럼 부리며 지휘권을 즐기는 것에 불과하다고 떠들 정도였다. 이때 폼페이우스 진영에 있었던 원로원 의원들은 승리 뒤 카이사르 측 진영 사람들의 재산을 요구하였고, 카이사르의 최고 제사장 자리를 두고 언쟁을 벌이며 자신들을 따르지 않았던 원로원 의원들을 어떻게 심판할 것인가에 대한 [[논공행상]]을 벌였다. 이들은 어떻게 이길 것인가는 관심이 없었으며 오직 이긴 뒤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었던 것이었다. 카이사르는 병사들의 사기를 염려하여 그의 병사들을 아침마다 폼페이우스 진영에 포진시켜 싸움을 걸었다. 폼페이우스도 자신의 병력을 포진시켜 마주보았지만 그는 전투에 응하지 않았고 그럴수록 카이사르군의 자신감은 날로 드높아졌다. 또한 카이사르는 기병의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젊은 병사들을 선발하고 이들을 경무장시켜 기병과 함께 싸우도록 하였고 이로써 1천밖에 없었던 기병 전력을 보충하였다. 그리고 이러면서 소수의 기병전을 폼페이우스 측에 걸어 이들의 훈련도를 시험해보았다. 결과는 만족스러웠으며 폼페이우스 측 전사자 중엔 카이사르를 배신했던 두 형제도 포함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